보드게임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요즘, 우리는 외국에서 만들어진 게임에만 눈길을 주고 있지는 않을까요?
'카탄', '스플렌더', '테라포밍 마스'와 같은 세계적인 보드게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사실 한국에도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전통 보드게임이 존재합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쌍륙(雙六)'이 그것입니다.
쌍륙은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즐겨졌던 고급 놀이 중 하나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쌍륙의 유래와 규칙, 제가 직접 만들어 체험해본 후기, 그리고 현대 보드게임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 전통 놀이의 매력을 다시 한번 조명해보려 합니다.
쌍륙의 유래와 규칙, 그리고 장단점
쌍륙의 정확한 기원은 중국의 '육박(六博)'이라는 게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육박은 고대 중국에서 주사위를 사용해 말을 움직이는 게임으로, 주사위가 6면이라 '육'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쌍'은 두 개의 주사위를 의미합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이 놀이가 한국에 전래되어 귀족들과 왕족들이 즐기는 고급 오락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도 쌍륙이 퍼지기 시작했으며, '한양 풍속도' 등의 고문서나 그림에서도 사람들이 쌍륙을 즐기는 장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쌍륙의 기본 규칙은 단순합니다.
쌍륙판이라고 부르는 12칸의 게임판 위에 자신의 말을 6개 배치하고, 두 개의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수 만큼 말을 움직입니다. 목표는 자신의 말을 모두 한 바퀴 돌려 출발 지점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상대의 말과 같은 칸에 도착하면 그 말을 다시 처음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룰도 있어 단순한 운뿐 아니라 전략적인 플레이가 요구됩니다.
쌍륙의 장점은 규칙이 단순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주사위를 던지고 말을 옮기는 간단한 행위만으로도 빠르게 즐길 수 있으며, 상대방의 말을 잡는 쾌감과 주사위를 굴리는 긴장감이 적당한 몰입감을 줍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장시간 플레이를 하다 보면 패턴이 반복되어 다소 지루해질 수 있으며, 세부 규칙이 지역마다 다르게 전해져 현재는 정확한 룰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있습니다.
직접 쌍륙 만들어 체험해보기
저는 쌍륙의 재미를 직접 느껴보고자 쌍륙판과 말을 직접 만들어 보았습니다.
준비물은 간단했습니다.
두꺼운 종이, 마커, 나무 조각 몇 개, 기존 보드게임에서 빌린 주사위 두 개.
종이에 12칸을 그려놓고, 각각의 말은 나무 조각에 색칠을 해서 구분하기 쉽게 했습니다.
규칙은 인터넷에 나와 있는 자료를 참고해서 간소화된 쌍륙 룰을 적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움직임에 과연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었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꽤 몰입도가 있었습니다.
주사위를 굴릴 때마다 '과연 어떤 수가 나올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고, 상대방의 말을 잡았을 때는 생각보다 큰 통쾌함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상대와 격렬한 눈치 싸움을 하며 누가 먼저 모든 말을 돌려보낼지 경쟁하는 과정은 현대 보드게임 못지않게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몇 판 정도 진행하다 보니 패턴이 반복되면서 피로감이 느껴졌습니다.
확률이 대부분 승패를 좌우하다 보니 전략적 변수가 제한적이라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짧은 시간 즐기기에는 아주 적당했고, 오히려 현대식으로 룰을 조금만 다듬는다면 지금의 보드게임처럼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대 보드게임과 쌍륙의 비교: 전통 속의 가능성
현대 보드게임과 쌍륙을 비교해보면 여러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쌍륙은 규칙이 매우 단순하고 한 판에 걸리는 시간이 짧습니다.
현대 보드게임은 일반적으로 룰이 복잡하고 다층적인 전략과 선택지가 있어 장시간 몰입하기에 적합합니다.
쌍륙의 가장 큰 강점은 그 단순함입니다.
초등학생부터 노년층까지 누구나 쉽게 배워서 즐길 수 있는 접근성은 현대 보드게임이 갖기 어려운 매력입니다.
특히 상대방의 말을 잡아내는 쾌감은 '백개먼'이나 '루도'와 비슷하지만 쌍륙만의 직관적인 스피드가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보드게임처럼 확장성과 난이도 조절이 어렵고, 플레이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한계도 분명합니다.
만약 쌍륙을 현대 감각에 맞게 디자인하고, 룰에 변주를 준다면 충분히 새로운 캐주얼 게임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예를 들어 특수 카드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말마다 다른 능력을 부여한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게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쌍륙은 단순한 옛날 놀이가 아니라 한국 전통 보드게임의 원형으로서 충분히 재조명될 가치가 있으며, 현대적인 감각과 결합한다면 우리만의 독창적인 보드게임으로 부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